2020. 10. 12. 02:00ㆍ나중 일기
23년이나 지났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한데.. 더 나이들면 까먹겠지 싶어 기록해둔다.
디지털 카메라도 보급되기 전이라 딱히 사진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정확히 96년말 겨울인지 97년초 겨울인지는 기억이 애매하다.
겨울 방학때 갔던 거니, 아무래도 1997년 겨울이었지 싶다.
고3 되면 열심히 공부할거라며 친구 녀석과 둘이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종이 지도 펼쳐놓고 그냥 기차역이 어디있는지 따위나 보면서 일정을 잡았다.
... 사실 일정은 같이 간 친구녀석이 다 잡았다..
난 따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라 그냥 따라만 갔다.
우선 마산역에서 부산역으로 기차로 이동했다.
최종 목적지는 망양정이라는 곳이었는데, 교과서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 .... 경북 울진에 위치한 곳이다.
흠.. 계획을 친구가 다 잡아서 난 사실 망양정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친구 녀석이 기차로 최대한 북쪽까지 올라가서 정 안되면 밤새 걸어서 가면 된다길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줄 알았다.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는.. 포항에서 멈췄다. 밤이 깊었다.
더 이상 기차는 없다고 하고.. 버스로 이동해야겠다 싶었다.
다시 말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정보를 얻으러 국밥집에 들어갔다.
국밥집에서 국밥 먹으면서 주인 아주머니한테 망양정을 물었더니 전혀 모르신다.
울진 근처라고.. 울진 근처로 가는 차편이라도 알려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어 하신다.
국밥집 아주머니 딸이 있었는데, 우리더러 어느 대학 다니냐고 물어본다.. 고등학생이라고 하니 또 어이 없어 한다.
그런데 국밥집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버스 알려준다면서 자기 모텔방에서 몸 좀 녹이고 출발하라고 한다. 나랑 친구는 별 생각없이 그 아저씨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아저씨가 무슨 사연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고마워한다. 낯선 자기를 믿고 방까지 따라 들어온게 고맙다나.. 그러면서 또 남자 두명인데 뭐 이런건 겁 안내고 당연히 들어오고 그래야 하는거란다.
... 솔직히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사람이 그리웠던 분 같다.
아무튼 거기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거의 막차였다.
거기 모텔이나 그런데서 자야 할 것 같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옆 자리에 있던 분이 말을 걸어온다.
한 20대? 정도 되는 남자분인데.. 망양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간에 울진 도착하면 딱히 잘 곳이 없을거라며 자기 집에서 재워준다고 한다.
혼자 쓰는 방도 아니고 친구와 같이 쓰는 방이었는데.. 그 방 구석에서 친구랑 같이 잤다.
뭐 딱히 드릴건 없고, 감사 편지만 쓰고 다음날 새벽에 조용히 빠져나왔다.
일출 시간이 6시라길래 5시부터 나와서 택시타고 망양정에 도착했는데....
해가 ... 안 뜬다?
정말... 겁나 추웠다.. 포카리 스웨터를 들고 있었는데, 그게 얼어붙었다.
결국 해가 뜬 시간이 거의 7시 30분 정도 였던 것 같다..
이제 집에 가야지 하고.. 시골역 ( 이름 기억 안남 )으로 갔다. 지도상에 역이 있다고 표시된 동네였다..
그런데 그 역에는 기차가 서질 않는단다.
망연자실 하고 있는데.. 또 어떤 분이 학생들 어디 가냐면서 자기가 가까운 역이 있는 영주시까지 태워주겠단다. 말이 가까운 역이지 산길로 2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는 곳이다. 가면서 오색 약수터니 하는 곳도 틈틈히 들러서 맛보 보여주고 하면서 영주시에 도착했다. ( 그 분 중간에 경찰한테 걸려서 딱지도 끊었다..; )
영주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기억이 없다. 그냥 그 여행 과정에서 만났던.. 모텔 아저씨, 재워준 청년, 차 태워준 아저씨만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 분들에게 난 어떤 존재였을까.. 그 분들은 왜 친절을 베풀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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